사실과 기록의 괴리. 그런저런 역사들



송강, 오해받을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오해를 많이 받은 분.
서애, 오해받을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오해를 받는 분.
 -『유성룡인가 정철인가』,P262,-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너머북스 출판, 오항녕 지음)은 기축옥사 당시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들이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을 때 위관이 누구냐를 둘러싼 이덕일과 오항녕의 주장에서 시작됩니다.(2009년 당시 논쟁.) 이덕일은 해당 사건이 선조 23년(1590년)이고 당시 위관은 정철이라고 주장하며 오항녕은 해당 사건이 선조 24년(1591년)이며 당시 위관은 유성룡이라고 지적합니다. 
 저자인 오항녕은 나중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이 주장이 이덕일만의 단순착각이 아닌 400년된 역사와 배경이 있음을 책 전반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기록이 소실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축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89년~1591년까지 지속됩니다. 그리고 나서 임진왜란이 발발하는데 한양을 버리면서 한양이 불타게 됩니다. 이과정에서 수많은 문서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실록, 승정원일기, 고려사의 초고, 사초등이 불에 타버립니다. 이과정에서 기축옥사 당시의 추안도 타버립니다. 더불어 사관들도 피난와중에 사초를 태우는등 당시 기록에 필요한 사초가 남아나지 않게됩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수정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선조실록 편찬 당시 그렇지 않아도 사초가 남지 않아 개인의 일기까지 실록의 편찬자료로 써야 할 지경이었습니다만, 실록편찬을 맡을 인물이 이이첨이라는데 있지요. 원래 이항복이 총재관이고 이정구와 신흠이 함께 감수를 맡았고 이들은 당대 최고 학자이자 관료였지만 중도에 유배되거나 파직되어 이들을 대체하여 편찬을 맡은게 이이첨입니다. 그리고 이이첨은 대북은 치켜세우고 그외 서인과 남인은 깎아내렸으며 나중에 실록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선조수정실록이고 원래 인조 원년에 제기되었으나 미뤄졌고 인조 19년에야 이식의 상소로 시작되어 효종8년에 마무리 됩니다.

 수정실록을 맡은 이식은 선조실록에서 부실한 기록을 채우고 잘못된 기록을 고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축옥사입니다. 기축옥사에 대해 이이첨이 편찬한 선조실록은 선조 23년, 24년의 기록이 부실했으며 특히 가장 민감한 이발의 노모와 관련된 부분이 빠졌습니다. 이식의 조사 과정을 통해 해당 사건은 1591년에 아니라 이양원이 위관이었을때라고 기록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시 건저 문제로 정철은 귀양을 갔으니 빠집니다. 다만 위관 교체가 5월이었기에 이양원이든 유성룡이든 둘다 1591년때 위관이고, 송강행록에서 귀양에서 풀려난 정철이 상봉하여 유성룡에게 왜 그들을 살려주지 못했냐고 따졌으니 유성룡이 위관일때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이후 기록에서 적어도 선조와 광해군 당시에는 정철이 위관이라는 주장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록이 소실되었고 기억이 당파마다 기억이 왜곡되면서 숙종대에 이르러 정철이 위관이라는 주장이 들고 일어납니다. 이 당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고 있었고 숙종 초기에 제기되다 기사환국으로 다시금 제기됩니다.
 이당시 인물들이 나름 정리하려 시도는 했지만 여기서 몇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실록을 볼 수가 없다. 즉 실록을 열람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같이 우리는 자료들을 일괄적으로 정리하여 접근할수 있는 반면 당시 인물들은 모든 자료를 보는데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기록의 소실과 더불어 이로 인한 각 당파마다 가지는 기억은 왜곡되었고 위에서 지적한 한계로 인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왜곡되어 왔던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 추국장이라는 특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당시 정철을 위시한 서인주축이 추국을 주도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추국은 방법과 형식에 따라 참여 관원, 장소, 규모가 달라는데다 기축옥사는 정승은 물론이고 양사가 모두 참여하였으며 동인의 이산해와 유성룡도 옥사처리에 대한 공신호를 받았습니다.(이산해는 아성부원군, 유성룡은 풍원부원군.) 따라서 정철의 조작내지 악의에 의한 사건처럼 보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더불어 조선은 징역형이 없는데다 형벌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점진적 유죄성의 원칙이라 부를 관념이 적용되는등 현대와는 다른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몇가지 지적합니다. 당쟁론은 식민사관의 산물이라는 인식은 안이하며 이것이 식민사관의 특수한 논리도 아니고, 그전에도 존재했으며, 이것은 보편적 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사유 또는 접근 방식이며 정치사를 인간의 의지와 욕망만을 잣대로 서술하고 설명할때 나타나는 보편적 오류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PS: 흔히 사극이나 역사책에선 기축옥사를 정철을 위시한 서인이 주도하고 조작한 결과로 그리고, 정철이 추국을 주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부분에 대해선 다시금 검토가 필요합니다.
PS2: 예전에도 제가 포스트로 작성한적이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왜곡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통해 기억을 정정하게 되는데 그 기록마저 소실되면 왜곡된 기억을 정정하는 것은 더 어렵지요.





덧글

  • 레이오트 2015/06/27 18:38 #

    괜히 사실로서의 역사, 기록으로서의 역사라고 말하는게 아니죠.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그만큼의 패자의 기록도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역사의 심판, 재조명이 가능한거죠.
  • 누군가의친구 2015/06/29 23:21 #

    역사가들의 역활이야, 빈 고리를 찾아서 규명하고 채우는 것인지라...
  • 로자노프 2015/06/27 18:42 #

    오류가 있네요. 조선시대에도 나름 징역형이라면 징역형이라고 할만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소위 도형이라고 하는데 1~3년 정도 관아의 옥에 가둬두고 가끔 노역을 시키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5/06/29 23:20 #

    여기서 말하는 징역이 없다는건 이겁니다.

    추국을 개시후 옥사에 기한없이 갇힌다는거죠.(...) 논쟁의 핵심이던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이도 몇달은 옥사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 2015/06/27 20:1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29 23: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egane 2015/06/27 20:38 #

    결국 진실은 저 너머에....ㅠㅠ
    가려진 부분들이야 그냥 그런 설이 있을 수 있다 싶은데... 자료소실이란 점은 진짜 뼈아픈 일이지요.
    이게 다 선조때문이야!! ← 이런 주장만 안 나오면 다행일지도...^^
  • 누군가의친구 2015/06/29 23:16 #

    정말 뼈아프죠. 하지만 남은 사료등을 보면 사실 우리가 아는 기축옥사가 사실은 꽤 부풀려지고 잘못알려져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선조때문이야! 할 법 한게 정철이 최영경은 무고한듯 하다고 풀어주자고 하니 거부한게 선조고,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들에게 노인과 아이에게 고신을 가하는건 없는 법이라는 신하들의 주장도 뿌리치고 강행한게 선조인지라...ㄱ-
  • 셰이크 2015/06/27 21:45 #

    한편, 현대에 송강의 이미지가 과도할 정도로 좋지 않은데는 수험 세대의 비뚤어진 분노도 있지 않을까하고...^^
  • 해색주 2015/06/27 23:21 #

    부르셨습니까? 저 그분 덕분에 많이 삐뚫어졌었죠.
  • 레이오트 2015/06/28 13:33 #

    전 송강 정철 작품을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변환하니 그 순간부터 그 사람 글이 정말 편안하게 느껴지더군요 ^^;;;;;;
  • 누군가의친구 2015/06/29 23:13 #

    정철의 가사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이 한두명은 아니죠.ㄲㄲㄲ
  • Megane 2015/06/30 12:10 #

    유배만 보내놓으면 마구 써 댔으니 뭐...(젠자앙~!!!)
  • 위장효과 2015/06/30 19:01 #

    사랑을 하려면 조용히 저 혼자 할 것이지 뭐 잘났다고 그렇게 떠들어댔는지 말입니다...
    (에? 그 사랑이 이 사랑하고는 다르다고요?????)

    여기도 죽을 뻔한 사람 하나 추가요.
  • 세피아 2015/06/30 01:31 #

    진짜 역사가 참.... orz
  • 누군가의친구 2015/07/11 22:49 #

    그래서 역사가들이 1차 사료를 찾고 모으고 추론해야 하는 부분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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