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나면 빡치는 정해왜변 그런저런 역사들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에 앞서 일어난 전초전으로 다루거나 언급하는 정해왜변입니다만, 사실 기록을 보면 깊은 빡침을 느낄수 있습니다.



선조 21권, 20년(1587 정해 / 명 만력(萬曆) 15년) 2월 26일(을유) 1번째기사
전라 감사가 왜적 18척이 흥양에 침범하였는데 녹도 권관 이대원이 전사했다고 보고하다
전라 감사가 왜적선(倭賊船) 18척이 흥양(興陽) 지경을 침범하였는데 녹도 권관(鹿島權管) 이대원(李大源)이 전사했다고 치계한 것을 입계(入啓)하니, 우윤(右尹) 신립(申砬)을 방어사로 삼아 군관 30명을 거느리고 그날로 나가게 하였다.


이 기록이 흔히 알려진 정해왜변당시 교전 기록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변사는 전라좌수사와 전라우수사를 국문하라고 청합니다.


선조 21권, 20년(1587 정해 / 명 만력(萬曆) 15년) 3월 10일(기해) 1번째기사
비변사가 군사를 잃은 좌수사 심암, 복병선을 잃은 우수사 원호의 국문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좌수사 심암(沈巖)은 이대원(李大源) 등이 전몰할 때 관망하며 진격하지 않아 모두 함몰(陷沒)되어 군사를 잃어 나라를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우수사 원호(元壕)는 복병선(伏兵船) 5척(隻)이 피침하였으나 따라가 잡지 않았습니다. 모두 잡아들여 국문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이거 내용을 보니 녹도 권관 이대원이 나서서 교전하고 있는데 상관인 전라 좌수사 심암은 구경만 했고 전라 우수사 원호는 복병선이 5척이나 피침되는데도 따라가지 않았으니 국문하라고 청했고 선조는 윤허합니다.


선조 21권, 20년(1587 정해 / 명 만력(萬曆) 15년) 4월 4일(계해) 5번째기사
사절한 이대원의 집안에 물품을 내리라는 비망기
비망기를 내렸다.
“전번에 유사(有司)가, 이대원(李大源)이 사절(死節)했기에 증작(贈爵)하는 문제를 공사(公事)로 만들어 입계(入啓)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가령 사절했더라도 증작하는 일은 사체(事體)가 가볍지 않아서 함부로 시행할 수 없다고 여긴다. 우리 나라는 인심이 너무 경솔해서 헛된 말이 무수하고 그것을 발설할 때 마치 친히 본 것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 때문에 다시 소상히 살펴 처리할 것을 전교(傳敎)한 것이다. 이 사절(死節)에 대한 문제는 마땅히 추후로 처리할 것이다. 다만 대원은 용감하게 앞장서 배에 올라갔었고 나랏일에 죽었으니, 특별한 은혜가 없을 수 없다. 쌀 20석을 내려 주라. 대원의 어미에게는 유사를 시켜 매달 주육(酒肉)을 보내주고 봄가을에는 쌀을 지급하여 여생을 마치도록 하라.”

그리고 기록을 보건데 녹도 권관 이대원만 홀로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후 그를 추모하는 사당도 세워졌고,


광해 97권, 7년(1615 을묘 / 명 만력(萬曆) 43년) 11월 23일(을미) 4번째기사
전 부사 첨사 정발을 충신 대열에 수록하게 하다
찬집청(撰集廳)이 아뢰기를,
“김천일(金千鎰) 등을 충신의 대열에 수록하라는 하교가 있었는데 ‘이대원(李大元)·이순신(李舜臣)·원균(元均)·이억기(李億祺)·최호(崔湖)·이복남(李福男)·임현(任鉉) 등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어찌 수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을 자세히 의논해 결정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상 7인들의 사적을 저번 정기원(鄭期遠) 등의 예에 따라 예조로 하여금 속히 조사한 다음 입계하여 결정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산 첨사(釜山僉使) 정발(鄭橃)은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왜적에게 죽었으니 또한 예조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수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후 광해군때 임진왜란때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원균은...ㄱ-)과 같이 언급됩니다만, 우리는 왜 이대원이 홀로 교전할때 전라좌수사 심암은 왜 구경만 했는지 확인해야 겠습니다만...


선수 21권, 20년(1587 정해 / 명 만력(萬曆) 15년) 2월 1일(경신) 1번째기사
흥양에 침구한 왜선을 녹도 보장 이대원이 막아 싸우다 패하여 죽다
왜선(倭船)이 흥양(興陽)에 침구하였는데, 녹도 보장(鹿島堡將) 이대원(李大元)이 막아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이에 앞서 왜선 수 척이 녹도 근처에 침범하자 이대원이 미처 주장(主將)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채 그들을 쳐서 수급을 벤 일이 있었는데, 수사(水使) 심암(沈巖)은 그가 자기의 공으로 삼은 것을 미워하였다. 얼마 안 되어 왜선이 손죽도(損竹島)를 침범하자, 심암이 이대원을 척후(斥候)로 삼았는데 뒤이어 응원하지 않았으므로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어서 대적하지 못하고 패전하였다. 조정에서 그 까닭을 살펴 알고 심암을 잡아다가 신문한 다음 효수(梟首)하여 대중을 경계하였다. 그리고 좌방어사(左防禦使) 변협(邊恊), 우방어사(右防禦使) 신립(申砬)을 보내어 밤을 새워 남쪽 지방으로 출정하게 하였다. 전라 감사가 도내의 군사를 다 출동시켜 바닷가에 주둔하였으나 왜선은 이미 돌아가 버렸다.
이에 앞서 저 왜국 어선(漁船)과 상선(商船)들이 노략질하고 사람을 잡아갔었다. 공전(攻戰)할 계획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변경을 자주 침구하였으나 곧바로 또한 달아나 돌아갔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그것을 보통 일로 여겨 그다지 근심하지 않았다.

...

그렇습니다. 정해왜변 이전에도 왜구가 침입하자 이대원이 보고없이 왜선을 쳐서 수급을 벤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상관인 심암은 그가 상관인 자신에게 보고없이 왜선를 공격하여 왜구들의 수급을 베어 공을 세운것에 앙심을 품었고 정해왜변이 일어나자 이대원을 척후로 보내놓고는 이대원이 중과부적으로 죽을 동안 구경만 하다가 도주했습니다. 즉, 그 일 하나로 앙심을 품어 용감한 장수를 죽게하고 패전을 하여 전라도 일대가 약탈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전라좌수사 심암은 그렇게 앙심을 푼 대가로 당고개에서 참수되어 효수되었습니다. 참으로 치졸하기 그지없습니다.


PS: 임진왜란 발발 이전의 이순신의 전임자들중 몇몇 안습한 기록이 있는데 보면
유극량-이순신 바로 전 전라 좌수사. 인물이 쓸만하나 출신이 좋지 않고(평민인줄 알았더니 무과합격후 어머니가 노비인것을 알게됨. 노비 주인인 홍섬이 노비문서를 태우고 관직생활을 하도록 도움.) 겸손하여 체통이 문란해질것이니 교체하라고 사헌부가 청함. 
이천-심암 이후 전라 좌수사. 용맹하고 힘이 세다고 함. 전시가 아닌데도 휘하 부하들에게 장을 치다 보성군수 이흘이 죽어 민심을 잃어 교체. 원한이 들어있어 장을 친거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렸음.
이유의-이천의 교체당시 순천쪽 임명을 두고 힘은 세나 절제사의 재목은 아니라는 평을 들음. 1591년 전라 좌수사 제수.

사실 이순신의 바로 전임자였던 유극량은 능력은 있던 인물이나 출신을 문제삼아 사헌부가 교체하라고 하여 결국 교체되었고 이순신은 너무 진급이 빠르다고 반대했던걸 생각하면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에 부임할수 있던 게 그야말로 천운입니다.



덧글

  • 아이지스 2015/05/10 08:48 #

    노예제 덕에 인재를 못 쓸 뻔했지만 그 대신 들어온게 이순신이라니
  • 누군가의친구 2015/05/13 00:43 #

    그리고 유극량은 임진왜란때 임진강 전투에서 도하하여 공격하는것을 반대했으나 묵살되었고 상관인 신할이 도하하니까 어쩔수 없다하여 도하하였고 전사했습니다. 운 없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죠.
  • 연성재거사 2015/05/10 09:18 #

    저때 조선 보면 인사人事 관련 난맥상이 안습이죠. -_-;
  • 누군가의친구 2015/05/13 00:44 #

    저런 난맥상을 보면 정말 천행입니다.ㄱ-
  • 로자노프 2015/05/10 11:29 #

    ........ 오랜 평화기간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는 한데 저 때 보면 참....
  • 누군가의친구 2015/05/13 00:44 #

    각종 ㅂㅋ 스러운 일들이...ㄱ-
  • Megane 2015/05/10 13:35 #

    왜전 발발 이전의 상황들을 보면 진짜 항암제 탈탈 털어넣어야 할 듯...
    그렇다고 왜전을 한창 치르던 중에도 꼬락서니를 보면 역시...
    어제 징비록 보고서 곽재우 관군 편성...아오 젠장...
  • 누군가의친구 2015/05/13 00:45 #

    그러게 말입니다.ㄱ-
  • 지조자 2015/05/15 12:06 #

    진짜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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