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의 사망에 대한 음모론(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나중에 소설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자 심만청은 강주상과 강경식까지 원망하며 유가족의 자격으로 소설 작가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출간을 맞아 11일 기자들을 만난 김 씨는 그동안 소설 내용이 허구인지, 사실인지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많았다면서 "나는 허구라는 장치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찾는 작가이고, 내가 포착한 팩트(fact)가 정확하다고 받아들일 때에만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이휘소의 사후 심만청은 그보다 10년 전에 타계한 진영선의 미망인인 김경희와 가깝게 지냈는데, 김경희를 통해 한국에서 이휘소에 관해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았다. 심만청은 은퇴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는 조용한 사생활을 원했는데, 한국에서 이휘소를 모델로 한 소설이 출판되어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미용실이나 슈퍼 등에서 교포들이 알아보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다.
조용히 살고 싶던 심만청은 김경희와 강주상에게 허구로 가득 찬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매우 심란해했다. 강주상은 심만청의 위임을 받아 소설의 유통을 저지하였으나 두 번째 소설이 나올 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강주상과 강경식은 신문 기고들을 통하여 왜곡된 이휘소의 이미지를 바로잡으려 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나중에 소설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자 심만청은 강주상과 강경식까지 원망하며 유가족의 자격으로 소설 작가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이유 없다'로 나와 재판에서 패소했다.
-『이휘소 평전』, P259, 강주상 지음 -
해당 본문에서 언급한 처음 언급된 소설은 『핵물리학자 이휘소』입니다. 89년에 출판된 이 서적에 이휘소의 미망인인 심만청의 부탁을 받은 강주상은 저자에게 더이상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이런 노력은 위에서 언급된 '두 번째 소설'로 인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바로 1993년, 김진명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입니다. 이 소설이 히트를 치면서 세간에 박정희의 자주국방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휘소에 대한 잘못된 것이 사실인양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이휘소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강주상은 반박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 고 이박사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필자는 이박사가 핵무기 확산에 대한 큰 우려와 함께 개발도상국 특히 독재 체제하 개도국에서의 핵무기 확산에 대한 큰 우려와 함께 개도국에서의 핵무기개발을 매우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만큼 학자적 양심이 분명한 분이었다.
이휘소 박사는 생전에 한국의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대 AID 사업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공헌을 우리는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며 가상적인 핵무기 개발참여라는 허위사실로 그의 높은 뜻을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김진명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는 이휘소박사의 전기도 아니고 사건의 전개가 모두 사실과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충분히 의심할 가치가 있는 사실과 작은 허구를 통하여 더 큰 진실을 이끌어내자는게 필자의 의도였다. 지금과 같은 기로에서 역사의 주인이어야 할 우리 젊은이들을 무관심과 자아탐닉의 좁은 골목에서, 조국의 미래를 얘기하고 동포의 고통을 고민하는 광장으로 이끌어내려한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로서는 이책이 얼마나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쓰여졌느냐라는 관점에서 보다는 어떤 생각을 담고 있으며, 던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평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는 궤변으로 정당화하기에 이릅니다. 즉 더 큰 진실을 꺼내기 위해서 이정도는 할수 있고 사실보다 관점이 중요하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입니다. 즉 허구의 진실이라며 음모론을 통해서 진실을 밝혀낸다는 것이죠. 또한 김진명은 강주상이 이휘소는 핵물리학자가 아닌 소립자 물리학자이며 핵무기와 관련이 없고 박정희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핵심 주장은 회피하며 사고가 수상하다는 것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계에서는 이미 그가 핵무기 개발과 관련이 없다고 비판했음에도 김진명은 회피하기에 이릅니다.

결국은 93년 11월 우진필름이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김진명에게 해당 영화판권을 사며 제작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위에서도 인용된 것처럼 강주상과 강경식에게 그것을 수정하고 막아달라고한 이휘소의 미망인인 심만청이 분노한 것입니다. 특히나...
...강주상과 강경식이 노력했음에도 결국 소설로 모자라 영화화가 되자 심만정이 두 인물에게 원망했다는거죠. 결국 94년에 심만정은 『핵물리학자 이휘소』,『소설 이휘소』의 저자 공석하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저자 김진명에게,

9월에는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과,

11월에는 명예훼손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겁니다.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은

1995년 6월에 기각되었습니다. 법원은 출판, 창작의 자유를 들어 허구가 가미될수 있다며 기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손해배상 소송은 1998년7월에 원고 패소판결로 끝이 납니다.
해당 내용은 연합뉴스 보도뿐이고 자세한 내용이 없으니 다시 『이휘소 평전』의 내용을 인용하죠.
······위 소설에서 이휘소는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우리나라에 귀국하여 핵무기 개발을 주도하였는데, 미국에서 수술을 받아 다리뼈 속에 핵 개발에 관한 비밀 정보를 넣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핵무기 보유를 반대하던 미국 CIA, FBI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여 위 이휘소의 모습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 사실, 위 소설의 중간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와 이휘소의 일기를 임의로 작성하여 삽입한 사실······ 이휘소의 실제 생활과 다르다는 점을 거듭 표시한 사실이 인정된다.
······ 위 소설을 읽는 우리나라 독자들로 하여금 대체로 위 이휘소에 대해 존경과 흠모의 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것이어서, 우리 사회에서 위 이휘소의 명예가 더욱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위 소설에서 위 이휘소의 모습이 실제 생활과 달리 묘사되어 신청인들의 주관적인 감정에는 부분적으로 위 이휘소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여겨질지라도 위 소설의 전체 내용에 비추어 사회 통념상 위 이휘소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볼 수도 없으며······.
-『이휘소 평전』, P260, 강주상 지음 -
즉 법원은 물론 내용이 허구인건 맞는데, 독자들에게 존경을 맏게 되었으니 명예가 높아진 것이니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이휘소의 진정한 명예일까요? 이휘소가 핵무기 개발에 투신했다는 잘못된 사실로써 명예가 높아진다는 것 만큼 왜곡이 어디있습니까? 이휘소가 과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엄연한 사실(특히나 그의 조언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가 여럿 배출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을 두고 어째서 핵무기 개발이라는 거짓된 사실이 더 명예롭다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럼 김진명은 이후에 뭐라고 주장하냐고요?
출간을 맞아 11일 기자들을 만난 김 씨는 그동안 소설 내용이 허구인지, 사실인지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많았다면서 "나는 허구라는 장치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찾는 작가이고, 내가 포착한 팩트(fact)가 정확하다고 받아들일 때에만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가령, 작가노트에는 소설 '1026'과 관련해 "핵개발을 끝까지 강행하려 했던 박정희와 그걸 막으려 했던 미국과의 충돌이 바로 10.26의 본질이며 10.26에서 육사 11기의 집권까지를 미국의 프로그램이라고 봐야 된다"는 주장이 담겼다.
김 씨는 이에 대해 "취재 중 만난 한 미국 정보원의 증언이 10.26의 진실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당시 핵개발은 상당히 진척됐다고 보며 이휘소 박사가 거기에 연관됐는지 진실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박사밖에 모르지만 이 박사의 아들로부터 심증이 되는 증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취재 중 만난 한 미국 정보원의 증언이 10.26의 진실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당시 핵개발은 상당히 진척됐다고 보며 이휘소 박사가 거기에 연관됐는지 진실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박사밖에 모르지만 이 박사의 아들로부터 심증이 되는 증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비록 유족측이 패소했으나 김진명등의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명시하였습니다만, 김진명은 부정하며 여전히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휘소와 친분이 있던 사람이나 과학계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PS: 특히 이휘소의 지인과 유가족, 과학계에서는 그가 핵무기 연구와는 관련 없는 학문인 소립자 물리학자라는 사실과 핵무기 개발이 해당 학문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비판적이고 반대했던 사실에 대해선 김진명은 회피로 일관하고 있지요.
PS2:

자료수집을 통해 확인하니 뉴욕타임즈에서는 핵실험때마다 페르미 연구소의 이휘소를 언급했다고 잘도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그외 인터뷰 내용에서 상당히 위험한 발언들을 하는등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죠.
PS3: 한편 40억을 들여 제작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흥행이요?

7만명을 간신히 넘으면서 망했습니다.
PS4: 더 중요한건 결국 이거 2부작으로 쓰려던거 내용상 3부작으로 바뀌면서 (하)가 되어야 할 이 포스트는 (중)이 되었단 사실입니다.(이 무슨 이말년 같은 분량조절 실패도 아니고...)
덧글
이휘소 선생님은 발찌모르 사건이나 일으키던 cia의 간악한 암살책동에 의해 희생되신것이 분명한데!
그러니까 바이칼호 까지 우리의 고토회복을 위해서! 콩댄스를 추셔야!
그리고 콩댄스의 힘으로 ㅍㅇㅈㄹ를 향해!
콩댄스와 ㅍㅇㅈㄹ를 함께 시전해야 합니다!!!!!
팩트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