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 교체에 대한 한 외국인 학자의 주장. 그런저런 역사들

 그러나 필자는 고려 후기의 제도적 문제들이 단순히 왕조 순환의 쇠락 국면을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히려 그것들은 고려 전기에 이뤄진 정치적 합의의 본질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10세기  고려의 국왕들은 자신의 정치권력을 확장하고 왕조를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놓으려고 노력하면서 중앙집권적 관료 제도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그러나 그런 제도를 시행하려던 사회는 강력한 귀족적 전통과 배타적인 지방자치의 전통을 가진 사회적 분화가 미흡했다. 그 결과 중앙집권적 관료 제도와 지방적 귀족 제도 사이의 타협이 이뤄졌는데, 귀속적 사회집단이 정치적 역활을 수행하며, 세습적 지방 지배층(그들은 향리라고 불리게 되었다.)이 관원으로 진출하고 전국 대부분의 군현郡縣을 관리하는 체제였다. 정치적 역활과 사회적 역활이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 등용된 관원들은 강력하고 새로운 중앙집권적인 귀족적 관료제도를 바런시켰고, 그들의 이익은 더 이상 지방 향리층의 그것과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국가가 세습적 지배층에 지방행정을 맡기는 것은 향리의 협력에 의존하고 물적·인적 자원에 접근하려면 전통적인 지방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중앙과 지방의 이익, 그리고 국왕과 중앙 귀족 관원(그들은 양반으로 열려지게 되었다.)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은 고려 전기의 정치적 정착 과정에 내재한 현상이었다.

 강력한 중앙 귀족 관료 제도의 발흥에서 야기된 근본적인 갈등은 지방 향리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지만, 외국의 침략으로 왕조 후반 커다란 압박을 받지 않았다면 고려의 정치체제는 그럭저럭 유지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침략들은 국가의 자원을 유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향리에게 집중된 전통적 지방 사회의 질서가 중앙 양반의 경제적 이익에 더욱 많이 침식되는 악화된 상황을 가져왔다. 지방 사회가 붕괴된 결과는 국가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기반을 잃은 지방 향리들이 기회를 찾아 수도로 모여들어 중앙 양반의 권력을 위협하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났다.

 견고한 중앙 양반 귀족에 맞서고 근본적인 개혁을 실행할 능력과 권위가 부족했던 고려 후기의 국왕들은 여러 방법 -외국인과 환관에게 정치권력을 주어 양반의 영향력을 상쇄하고 향리에게 군역을 지우는 대가로 관직에 등용하는 것을 포함해서-을 동원해 악화되는 상황을 타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은 중앙 귀족 관원들의 위협을 증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제도적 구조가 더이상 자신들의 필요에 봉사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국왕에게서 멀어지게 만든 결과, 위기에 봉착한 개혁적 양반들은 마침내 비교적 신진이며 보수적 반대파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무력을 갖고 있던 무장 이성계와 연합했다. 뒤이은 정치적 투쟁은 1392년에 고려의 멸망으로 끝났다. 새 왕조의 건설자들은 부분적으로 국왕과 신하의 권력균형을 바로잡는 정치 개혁을 계획했지만, 정치권력을 둘러싼 경쟁을 줄이고 국가의 사회적·정치적 지배층으로서 양반의 위치에 힘을 싣는 데 좀더 주력했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의 수립은 상당히 높은 정도의 사회적 차별을 전제로 한 수입된 중앙집권적 관료 제도와 귀속적 사회집단이 자원과 정치적 역활을 장악하고 있던 지방자치적인 토착적 전통 사이에서 빚어진 긴장의 산물이었다. 고료-조선 교체기에 추진된 국가의 제도 개혁은 중앙 양반의 이익을 둘러싼 사회 ·정치제도의 개편이었고, 따라서 일정한 정도의 중앙집권화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지방 유력층의 이익에 주로 기초했던 옛 질서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요컨데 우리가 본 것은-여전히 역사상 관료 사회의 넓은 범위안에서-강력한 귀족 제도(그 안에서 지배족인 사회집단은 지방에 기반을 둔 유력층이었다.)에서 귀족 제도와 관료 제도가 혼합된 체제(거기서 지배적인 사회집단은 그 권력과 권위를 조정에서 벼슬한 조상에게서 가져왔다.)로 옮겨간 변동이었다. 이것이 역사의 '진보'든 아니든 필자는 이것이 목적론적 판단의 문제에 매우 가깝다고 보았다. 확신하고 있는 한가지 사실은 그것이 정체停滯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존 B. 던컨, 『조선 왕조의 기원』p21~p23-


얼마전 이 책을 접할 기회가 있어 읽고 있습니다만, 독특한 점은 기존의 통설, 즉 신흥사대부가 옛 귀족을 대체하며 등장하여 조선을 건국했다는 주장에 정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중앙 양반 귀족과 지방 지배세력간의 대결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한 조선 건국 세력을 단순히 사대부로 규정짓는건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흥 사대부'의 조건에 맞는 가문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요. 또한 이런 왕조교체를 혁명이라기보다 10세기에 시도해왔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수립의 노력이 정점에 달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흔히 고려말 상황을 통설로써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던 '권문세족 VS 신흥 사대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PS: 해당 주장을 한 존 B.던컨은 미국 UCLA 아시아언어 문화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덧글

  • 연성재거사 2014/12/20 01:10 #

    사실 이전에 학자들이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하기 위해 조선건국에 대해 무리수를 저지른 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거듭된 공신책봉으로 인한 관료계급의 특권화와 중앙집권제의 정점, 그에 따른 지방사족의 정치 편입화가 당쟁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던컨의 설에 더 동의하게 되더군요.(조선의 지배층이 고려에 비하면 다양해진 것 같아도 다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얽혀있었고 말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4/12/20 12:23 #

    사실 던컨이 그 과정이 정체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어찌보면 식민사학 극복이라는 명제하에 일어난 반동의 결과가 참...ㄱ-
  • 골든 리트리버 2014/12/20 12:52 #

    사실 조선시대사 뿐 아니라 근현대사에 가까워 질수록 한국사 학계의 무리수가 늘어나긴 합니다. 문제는 이제 그 무리수를 둔 까닭을 파악해보니 조금만 논리적으로 판단했다면 태반이 불필요했다는 사실이죠. (...)
  • Megane 2014/12/20 10:53 #

    분명히 저 저술은 고려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4/12/20 12:24 #

    사실 자료가 많고 초기에 그렇게 통쳐버려서 여말선초에 대한 연구가 적은게 오늘날같은 인식을 만든 원인이긴 하죠. 그때문에 저렇게 연구가 필요합니다.
  • 전위대 2014/12/21 19:49 #

    사실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구분 자체도 그다지 칼같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더군요.
  • 누군가의친구 2014/12/23 16:36 #

    사실 그렇게 구분된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는 사실 서로 인척관계인 경우가 많아서 말입니다. 정도전만 봐도 하륜이나 이숭인이 이인임과 어떤 관계인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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