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수도가 방어적 기능을 충실히 한 경우는 적다고 봅니다.
고구려의 경우만 하더라도 초기 수도던 환도성만 해도 동천왕이 관구검의 공격에 패한후 동예까지 추격당하는 과정에 함락당하여 불타버렸고
백제의 초기 수도던 위례성 역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 의해 포위되어 아신왕이 항복하여 간신히 물러나게 하였으나 그 다음 왕인 장수왕에 의해 함락된바 있으며,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성 역시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주하였고 이후 얼마 못가 함락되었습니다.
신라의 경주 역시 후백제의 견훤의 침공에 의해 함락되어 경애왕이 죽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고려의 경우 거란의 2차 침입당시 강조의 군대가 거란의 성종의 공격에 격파된 이후 현종이 나주로 급히 피난을 가야했으며 개성자체가 함락되었습니다. 3차 침임을 물리친 이후 개성에 나성을 추가로 증축하였으나, 몽고의 침입때 별다른 방어적 구실을 하지 못했으며 몽고가 수전에 약한 이유로 강화도로 천도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고려말 홍건적의 2차 침입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신하고 개경이 함락된바 있습니다.
조선에 와서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의 부대가 고니시 유키나카의 부대에 전멸된 이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 의주로 피신해야 했으며 쉽게 함락되었고 이괄의 난때도 함락당한바 있으며, 정묘, 병자호란때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현대사만 따져도 서울은 한국전쟁 당시 두번이나 점령당하여 부산으로 피신해야만 했었지요.
이런 점들을 보면 한국사에서 수도가 점령당하는 사례들은 대게,
-국경의 방어체계가 일순간에 무너질 경우 취약함.
-수도는 대게 방어적 기능보다는 행정적 기능에 중점을 둠.
-수도를 버리고 피신하는 행위들은 적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종심을 늘리는 역활을 하여 전세 역전의 가능성을 가져옴.
이렇게 볼수 있습니다.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하공진은 화친의 사자를 자청하여 거란의 성종을 만난 자리에서 거란이 고려의 지리정보에 약하다는 걸 이용하여 고려의 남쪽은 수천리에 달하며 이미 현종이 멀리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하여 성종의 추격의지를 꺾게 만드었습니다.
임진왜란의 경우도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하였으나 선조의 피신을 예상하지 못하여 당황하였으며 이후 평양까지 점령하였으나 남해안에서는 이순신의 수군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며 위협하고 의병들이 각지에서 일본군을 괴롭히며 보급의 문제를 야기하여 더이상의 북진을 할수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것이라고 믿었으나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각료들은 이미 피신하였으며 오히려 서울에서의 지리파악의 혼선 및 춘천에서의 대패로 기존전투계획에 차질을 빚어 한국이 얻은 얼마 안되는 시간은 미군의 증원을 부를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성공합니다.
또한 피신한 사례와 대응을 보면 방어선이 뚤린 이후에는 피신을 하면서 청야작전및 타 지역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반격하는 경우도 있었던바, 수도 점령 이후의 대응책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결론:
-한국사에서 수도는 대게 방어보다는 행정에 치중했으며 수도가 함락되는 경우는 대게 기존 국경 방어체계가 무너진 경우임.
-한반도 자체가 아무리 산지지형이 70%라고 해도 종심이 얕은 이유로 방어체계 붕괴시 수도가 공격받거나 함락되는 경우가 빈번함.
-한반도 자체가 아무리 산지지형이 70%라고 해도 종심이 얕은 이유로 방어체계 붕괴시 수도가 공격받거나 함락되는 경우가 빈번함.
-수도를 포기하는 행위는 방어적 이점이 없기에 나온 자연적인 일이며 오히려 얕은 종심을 깊게하여 대응체계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음.

















덧글
기껏해야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고구려의 평양성, 베네치아, 이 정도 밖에 없는것 같군요.
수도의 일부를 천연의 요새화한 경우로 아테네, 로마, 파리의 시테섬, 에든버러가 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한국사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생각해봐도, '수도'라는 한 지점에 방어 체계를 집중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넓은 종심을 포기하고 '점'에 아무리 '껍데기'를 두껍게 둘러도 한번 뚫리면 끝장이니까요. 수도에 대한 방어 집중은 국가가 수립된 극초반기나, 당장 수도와 같은 거점 지역을 살리지 못하면 끝장일 정도로 절박한 상황일 때나 먹히는 개념입니다. 근대 이후의 수도에 대한 침공 작전들도 딱히 그 곳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정치적인 요소가 더 강하지요. 적국의 교전 의지 박탈, 수도 점령이라는 정치적인 명분 등등. ('적국 수도의 랜드마크-제국 의회의사당, 에펠탑, 파르테논, 콜로세움 등등-에 휘날리는 아군의 깃발'보다 더 확실한 선전 효과는 없습니다.)
있지만, 나중에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지역을 수도로 선정하는 게 일반
적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수도가 포위당할 지경이면 사실상 나라 망한거나 마찬가지니...
콘스탄티노플은 위치가 너무도 절묘했으니 이건 논외로 쳐야 할 거 같습니다. 딱 반도의 끝에 자리잡고 있으니 성벽으로 육지쪽 막고 바다쪽은 쇠사슬에 해군으로 막으면 되고...그 바다가 또 최고의 양항으로 기능을 다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