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날 열렸던 파티에 대한 ‘패’싸움










우선 이희진의 이 엉터리 포스트부터 지적하자면...

T-34 구형론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T-34가 언제 구형이였냐? 이거입니다. 불행이도 이희진은 그간 T-34가 제 2차대전 초기에 등장했으니 1950년이면 구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걸 자신이 비전문가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리죠.
정말 어처구니 없는 주장인데 T-34는 등장이후 끊임없이 개량되었습니다. 아에 해당 전차 설명을 보면 T-34/76 1940년형, 1941년형, 1942년형, 1943년형, T-34/85 1943년형, 1944년형이 왜 나오겠습니까? 개량도 잠망경 부설이나, 큐폴라 변경, 버스킷 추가, 포탑 변경, 주포 변경, 전면 포탑장갑 강화등 자잘한 개수가 끊임없이 이루어진가 T-34입니다. 그리고 전후에도 생산되어 T-54/55 가 나오기 전인 1950년대까지 소련과 공산권 국가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던 전차가 T-34/85입니다. 애초에 구형이 아니라 일선에 수만대씩 굴리던 놈을 이희진은 구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이는 현대 3세대 MBT인 레오파르트2나 M1에이브람스가 1980년대 나왔다고 구형이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치졸한 수법은 애초에 T-34가 구형이라고 주장한 이희진의 착각이죠.
또한 군사편찬연구소는 군직속이고 보수적이니 기대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다시 말하죠.

그런데도 자신의 주장하는 증거는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를 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놓고...

이런 답이 나오니까 6.25전날 열렸던 파티에 대한 ‘패’싸움라는 포스트를 써서 '패'싸움 운운하면서 자신을 고수로 지칭하는 모양인데 이 얼마나 자아도취한 정신승리의 흔적인지 말입니다.

이걸 봅시다.

자신에게 '버티는 수'가 있다면서 미군이 한국에 절대적 영향력이 있으니 쿡 찔러 파티 열게 하는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소리죠.
이미 제가 작년 6월말에 작성했던 하리마오 박승억이 사실은 사기꾼임을 적은 포스트(http://ksdd5713.egloos.com/5670996)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군사고문단(KMAG) 상황이 어땠는지 다시 언급합니다.
1949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7월 1일 발족한게 미군사고문단입니다. 초대단장은 로버츠 준장입니다. 문제는 6월 초에 로버츠 준장은 임기가 끝나 퇴역하였다는 거죠. 이 로버츠 준장의 퇴역으로 그 공백은 당시 참모장이던 라이트 대령이 임시 대리로 맡았습니다. 그러나 이 라이트 대령은 퇴역하는 로버츠 준장을 환송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상태입니다. 실제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는 요코하마에 있었죠.
즉 이는 이희진이 주장하는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미군이 실제로는 그럴 환경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한국내 유일한 미군인 미군사고문단의 지휘할 사람이 부재인 상태이죠. 애초에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인사교체가 일어났고 그 공백을 매꿔야할 임시 대리인 참모장도 환송때문에 자리를 비웠습니다.
이는 지휘관이 자리를 비워도 될 상황으로 판단했다는 소리고 또한 미군사고문단에서 한국군에 압력을 넣을 자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엄연히 당시 한국군 최고 지위관인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까지 참여한 육군 구락부 개설기념 파티입니다.
당연히 이름에서도 알다시피 육군 행사였고 육본이 주최했으며 당시 미군사고문단내 지휘관 자격도 없는자가 무슨 근거로 파티를 열라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나서 이희진은 이렇게 적습니다.

이야, 이거야 말로 정신승리인데, 이미 공개된 6월 당시 CIA의 기밀문서에는 여전히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실제로 한국군은 꾸준히 감지했지만 미군은 CIA 자체가 무능하여 전쟁가능성은 계속 없다고 보고하였고 그결과 한국전쟁 발발 2개월후 CIA 국장이 책임을 물어 해임됩니다.
또한 미국의 대 공산권및 동아시아 첩보능력은 매우 무능력했습니다.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CIA가 동맹자로 삼았던 대상은, 부패하고 믿을수 없는 두 지도자인 남한의 이승만과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개석의 정보기관이었다. CIA 요원들이 서울과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강렬하게 느낐던 것은 주변 들판에 널려 있던 인분에서 나는 악취였다. 믿을 만한 정보라고는 전기나 수돗물처럼 드물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CIA는 사기꾼과 공산주자들로부터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에 굶주린 피난민들이 정보를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콩 지부장이었던 프레드 슐레시스는 한국전 동안 중국인 난민들에게서 산 온갖 쓰레기 정보들을 정리하느라 그 다음 6년을 소비해야 했다."
『잿더미의 유산』(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2008.9) 99P중 일부
"2차 대전 막바지부터 1949년 말까지 극동에 관한 믿을 만한 유일한 정보 원천은 국방부 산하 신호 정보 기관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모스크바와 극동 사이에 오가던 공산주의자들의 전신 내용을 가로채고 해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이 남한을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놓고 스탈린, 마오와 협의를 하던 바로 그시간에 전신 탐지 능력이 갑자기 정지해버렸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군사계획을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정보 능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날이었다. 미국의 암호 해독 신경 중추이던 알링턴 홀에 이상이 생겼다. 여학교를 개조한 곳으로 펜타곤과 바로 코 앞에 붙어있던 이곳에 소련 첩보원 한 명이 침투했던 것이다. 이 첩보원은 월리엄 울프 와이스밴드였다. 언어학자였던 그는 러시아어로 된 조각조각의 메시지들을 영어로 해석하는 일을 했었다. 1930년대부터 모스크바의 첩보원으로 활동을 해왔던 그는 혼자 힘으로 소련의 비밀 전문을 해독할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파괴해버린 것이었다."
『잿더미의 유산』(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2008.9) 99p~100p중 일부
애초에 정보수집에서도 애를 먹었고 오히려 소련측이 심어둔 첩보원의 공작으로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의 협의도 놓쳤고 미국의 첩보능력이 마비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희진은 자료는 제시하기는 커녕 그 다음의 내용으로 이희진 특유의 '추측을 사실로 만들기'로 무시하려고 하지요.

사료가 충분히 남아있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이희진은 관련 자료들이 자신에게 불리하자 사료가 한계가 있다니 운운거리며 저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사료를 왜곡하는건 이희진 본인입니다.
이미 전에도 작성했던 소련의 '8월의 폭풍작전'에서도 소련측 사료는 아에 제외하고 일본측이 소련군의 기만작전에 낚인 첩보내용만을 근거로 작성한것부터 시작해서 위와같이 사실에 대해서도 사실확인이 안된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대는 부분을 보더라도 비난을 들어야 할것은 이희진 본인이지요. 사료가 충분한데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료는 교묘히 제외하고 자신의 추측을 근거로 삼는게 비난받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PS: 이희진의 그렇게 말하는 '고수'는 사료에 대한 비교대조도 무시하고 충분히 사료가 있음에도 '자신의 추측'을 근거로 삼는 사람을 뜻하는거군요?
덧글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7372255&dir_id=1&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C%9D%B4%ED%9D%AC%EC%A7%84%20%EC%86%8C%EB%A0%A8&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102
해당 서적의 초기 내용은 이 논문에 기초되어 있습니다.ㄱ-
충격과 공포군요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14602
해당서적에서 참고문헌 부분에 소련측 사료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죠.
현대전으로 따지면 북괴가 축성받은 신의 방패를 단 에무왕 얼굴에 7호 발사관으로 안 뚫린다고 난리친 판국인데 무슨...
소련측 사료가 없다가 아니라 소련측 사료가 (있지만 해석할 능력이) 없다가 맞을겁니다.
뭐 소련측 사료 무시는 그렇게 안하면 자신의 주장이 성립되지 않기때문일테니까요.
풉
사기를 칠거면 제대로 치던가하지...
85자체가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흉악한 맹수들을 상대할만 하다고 했으니 절대 무시할 전력이 아니죠..
물론 유엔군은 퍼싱에 이지에잇 셔먼에 패튼과 백인장을 몰고 왔으니... -_-;
전낙지 이숑키는 반란수괴에 국군이 정신 못차리게 만든 주범인데...
(엥??)
암호// 그건 오해입니다. 우선 K1 설계는 당시 미국의 GD가 했는데 이 업체는 M1 에이브람스 제조업체입니다. 즉 생긴건 M1 에이브람스의 축소형이죠. 또한 당시 M1 에이브람스가 아직 105mm 강선포였기때문에 K1의 설계요구사항에 120mm 활강포가 들어갈 여지가 더 없었습니다. K1이 생산될때즘에야 미국은 M1에이브람스의 주포를 교체하기 시작해죠. 그게 M1A1입니다.
다만 K1은 M1의 축소형이다보니 주퇴복좌기 여유공간이 부족하였고 이때문에 120mm 활강포 탑재를 위한 업건 사업이 8년이나 시간을 끌었습니다. 우선 한국군의 요구사항은 산악지형에서 노출을 줄이는 형태였고 당시 120mm는 독일만 쓰던터라 그게 고려가 되지 못한 탓입니다. 만약 한국형전차 사업이 몇년 더 늦었다면 결과는 달랐겠죠. 전두환탓은 아닙니다.
결론은 저런 말종이 제 지인이면, 때를 봐서, 묵사발 내고 싶습니다.
아, 위에 답변했지만 K1의 주포에 대한건 오해하고 계신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 나는 것이 주인장님 말씀처럼 미국이 어떻게 할지 몰라 그렇게 했다는 것은 조금 의아합니다.
120을 독일만 했다고 해도 MBT-70에 관해서는 주워주워 들을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유일한 공통점이 주포인데 독일이 120으로 했다고 한 것이 90년대에서야 알려졌다고 해도 당시 한국은 유능한 육사생도를 독일로 보냈고 지금 전현직 국방장관이 기갑과는 관계없지만 그 유학파들이고요.
소련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부활된 전통적 육군 강국을 미국이 같이 공동으로 신형전차 개발한 내역도 간접적으로도 몰랐다면 그것도 문제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이유가 있습니다.
보급이죠.(...)
당시 서방권이 105mm 강선포를 쓰고 있던터라 당연히 미국이나 한국이나 120mm 활강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물론 영국만은 대구경을 좋아하다보니 120mm 강선포-120활강포와는 다른 놈) 게다가 보급을 생각해도 105mm가 흔한터라 전시등을 고려하면 보급에는 유리했겠죠. 하지만 NATO의 주력전차를 레오파르트1에 이어 레오파르트2가 차지해버리고 미국역시 이스라엘이 노획한 T-72를 시험해보고는 놀라서 M1 에이브람스의 주포를 120mm 활강포로 부랴부랴 교체하기에 이릅니다. 이러면서 120mm 활강포도 보급문제도 극복하게 되지요.
이게 80년대 후반의 상황입니다.
물론 90년대 들면 독일이나 스위스등은 이보다 더 큰 대구경포(130mm내지 140mm)를 계획했지만 냉전이 종식되면서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죠. 다만 보급등을 고려하여 120mm는 유지하되 포탄의 성능 개량, 55구경의 장포신등을 통한 관통력 상승을 목적으로 두게 되었습니다.
결론: 그러니까 보급이라는 상황과 120mm 활강포의 확산 속도를 고려하면 당시 선택을 비난하기는 무리입니다. 다만 설계사상이 방어면적 증가보다는 피탄면적 감소를 노리다보니 나중에 120mm 활강포 업그레이드시 주퇴복좌기 공간이 모자라게 되었죠.(아에 포탑을 교체해버리는걸로 해결합니다.) 물론 ADD가 그런 실정을 고려해서 저반동 주퇴복좌기 개발을 통해 기존 K1 전차의 주포 개량등을 노리고는 있습니다. 아직 결과는 나올려면 좀 힘들겠지만요.
(http://rigvedawiki.net/r1/wiki.php/MBT-70)
...;;;
6.25사변이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다음으로 뒷골땡기게 하는군요 ==;;;;;;;;;;;;;;;
;;; 아 때려주고싶네요 --
아는 게 없으면 닥치고 있는 게 답인데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인간이죠.
인간적으로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민폐인 인간이니 아웃.
고생 많으십니다. 수고하세요.
딱보니 2차대전 --- 6.25전쟁 (냉전 스타트!) --- 냉전 --- 구소련 붕괴 --- 신냉전
이라는 역사적 도표도 모르는 수준인듯 -_-;;
45년 6월 이후의 미군이랑 소련군의 수준도 모르고.. 어휴 참
본문에 CIA의 정보수집력...하는 대목에선 잠깐 움찔했습니다.
CIA가 유능했던 적이 그들의 존속 역사중에 얼마나 되었었나요?
그들의 능력보다 이름이 더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