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슬리 멕네어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미군전사자중 최고 계급이었으며, 사인은 코브라 작전중 미 육군항공대의 오폭이었습니다.(...)
이미 제 1차 세계대전때 활약하여 35세의 나이로 임시 준장이 되어 미국 최연소 장군이 되기도 했고 제 2차 세계대전때는 미 육군의 지상군 총사령관으로써 병사들 교육과 훈련, 주기적 교체등 나름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분은
구축전차 X까! 견인포 최고!
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
미국의 구축전차라면 M10 울버린입니다.

아무튼 저분이 일개 장군이면 상관없는데 미 육군 지상군 총사령관이라는 겁니다.(...)
사실 미군의 기존 대전차포였던 37mm나 57mm가 위력이 형편없던건 실전을 겪고나보니 알겠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3인치 대공포를 기반으로 한 M5 76.2mm 대전차포가 급히 개발됩니다만 105mm 곡사포의 포가에 76.2mm 포를 그대로 얹힌꼴.ㄱ-
그나마 기존 견인식 대전차포들은 들어가는 인력이나 그런게 부담이 없지만 저 M5 대전차포는 조작과 운영에 10명이나 들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2.5톤 트럭 내지 하프트랙으로 견인해야만 하죠.ㄱ-

하프트랙으로 견인중인 M5(그리고 탑승한 조작인원 수도 주목)
그런데 같은 포를 쓰는 M10 울버린은 5명이 조작하는데다 M5와 달리 내려서 보병이 일일히 방열하느냐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고 기동력도 우수하고 하니 당연히 미 육군 병기국은 42년 5월 개발과 배치를 취소하려 합니다만...
멕네어 중장이 막았습니다.(...)
그래서 그해 8월 다시 부활해버렸고 1944년까지 2500문이 생산되고는 맙니다만...
당연히 이는 미친짓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전차 구축센터는
-자주식이면 1대로 끝나는데 견인식이면 견인차량까지 필요하니까 공간을 잡아먹는다
-편제를 견인식으로 바꾸면 300명이 더 필요하다.
당연히 합리적으로 저항합니다만
멕네어 曰
"견인식 대전차포가 적 전차의 효과적 상대가 될수 있다는 점은 이미 북아프리카의 실전 경험을 통해 증명 되었다."
...(사실 이것도 억지에 가까운 주장입니다.ㄱ-)
그리고는 밀어붙여 결국 전차 구축 대대의 절반을 견인식으로 바꿔버리라고 명령해버리죠.(한마디로 신나게 달리는 울버린 쓰다가 저 견인해야 하는 견인식 대전차포를 몰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배치된 M5...
문제는 우선 관통력에서 부터가 문제라는 겁니다.

명중률은 뭐래도 위력은 확실한 17파운드 대전차포
그나마 영국의 17파운드 대전차포는 정확도는 멀면 멀수록 떨어지기는 하나 적어도 관통력은 500m에서는 163mm는 나오는데 M5는 115mm밖에 안됩니다.
거기에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이게 105mm 곡사포의 포가에다가 포를 언힌 형태라 상당히 무겁고 부피도 상당하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로 인해 은엄폐에 상당히 불리하고 이동하는데도 불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결과는...
독일의 아르덴느 공세때 36%의 손실률을 찍고 말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 손실이 전차 구축대대의 85%에 해당한다는 말까지...(...)
제 823 전차 구축 대대 보고서 曰
"대전차포는 적 전차나 보병 부대의 측면 공격을 받아야 했고, 소화기과 기관총 공격에 의해 유린되었다 "
...
이쯤이면 미군도 슬슬 견인식 대전차포의 실상을 깨달아야 했고 1945년 1월 견인포 장비 전차 구축대대들은 가능한 빨리 구축전차 장비부대로 바꾼다라는 결정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90mm 대공포를 기반으로 개발중인 T8의 경우 200문 만들고 게임 끝이였죠.

별 활약할 기회도 없었고 200문에서 생산이 끝난 T8
결과적으로 그러한 결과들은 정말 피를 보고 나서야 바뀌었으니 그럴때보면 대전차포를 붙들고 전차를 상대했던 병사들에게 묵념하고 싶어진단 말입니다.
PS: 하여간 저 M5 대전차포는 공여되지도 않았고(원하는 나라가 없었음.) T8 역시 200문 가지고 공여될 턱이 있겠습니까? 물론 작고 엄청나게 찍어댄 57mm는 많은 우방국에 뿌려졌고 그중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피를 봐야 했지요.ㄱ-
PS2: 뭐, 사실 전차 구축대대를 따로 둬서 전차는 구축대대가 따로 상대한다는 개념도 문제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결국 이 개념도 종전후 얼마 안되서 없어집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지!!!
아무튼 멕네어 중장이 한 또하나의 업적은...
퍼싱의 생산과 투입을 늦춰버림.(...)
퍼싱이라면 이런 전차죠.

90mm에 장갑은 좀더 강화된 전차로써 사실 1943년 9월에 M26 퍼싱 10대가 완성되었지만,
멕네어 曰
"M4 셔먼 생산에 집중해야지, M26 퍼싱 만들 그런게 있냐!!! 필요없어!!"
그래서 500대 생산 계획은 물건너 가버렸지요.
게다가 이양반은 셔먼으로도 독일전차는 충분히 상대할수 있고 티거같은거 나와봐야 북아프리카에서 교전했을때 생각하면 그렇게 많지도 않을 거고 걍 대전차포로 상대하면 그만이라고 했습니다만,
실상은 티거는 예상보다 많았고, 판터라는 처음 보는 놈이 등장해서 더 많이도 나왔고...(...)
...
결국 전쟁이 끝날때쯤 해서 퍼싱이 등장하고 티거를 거뜬히 잡는 성과도 거둡니다만, 이미 멕네어가 장담한 셔먼은 그야말로 불타는 야라레메카 신세가 되어 미 전차병들의 피로 대지를 물들어야 했지 말입니다.
만약 멕네어 중장이 그러지 않았다면, 지난달 장갑묘님이 올려주신 포스트 셔먼과 쾨니히스티거의 대결처럼 벨튼 쿠퍼가 전멸한 사단 기동부대의 모습을 보고 퍼싱만 있었으면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거라고 비분강개할 일은 없었을겁니다. 사실 그런건 미군들 공통적 생각일지도 모르지요,
PS: 멕네어 중장은 사후 대장으로 추증됩니다.
PS2: 그 오폭건은 하필 선도기가 떨어뜨린 폭탄이 터진후 바람이 역으로 분터라 폭발후 생긴 연기가 잘못 퍼지는 바람에 융단폭격을 하기로 예정된 폭격기들이 미군진영에 떨어뜨렸고 당연히 잘못 폭격된걸 확인하고 긴급히 중지하라고 했지만 이미 몇대는 폭격을 진행했고 하필 전선 시찰 나가있던 멕네어 중장은 폭탄에 맞고 130여명의 미군과 함께 사망합니다. 그리고 2주 후 그의 아들, 더글러스 멕네어 대령은 괌에서 저격당해 사망.(...)
PS3: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저 완전히 퇴역시키지 않은 터라 M5 대전차포를 씁니다.... 바로..

이런 예포 사격을 해야 할 의장 행사때.(...)
아마 2013년 미 대통령 취임식때 같은 장면을 보게 되실겁니다.ㄲ(해당 이미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때 예포 사격)
이걸로 끝?...
------<추가>------
자,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만 이 포스트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레슬리 멕네어 대장에 대한 혹평만 다루고 있으며 어찌보면 정보가 편향적이라 멕네어 대장을 고집센 노인네로 폄하하고 말았죠. 이점에 대해 지적하시고 그에 대한 반론 포스트를 작성하신 장갑묘님의 포스트를 소개하고자 하니 오늘 이 포스트를 읽어주신 분들께서는 장갑묘님의 포스트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본의아니게 이 포스트로 정보의 왜곡이 있던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잘 생각해보니 저 분께 그 평판을 만회할 기회가 없었다는게 그의 불운이겠지요.
그리고 쓴소리 해주신 장갑묘님께 감사드립니다.
레슬리 맥네어 중장이 미국 기갑부대에 미친 영향 by 장갑묘






덧글
PS: 어찌보면 코브라 작전의 재물로 바쳐진것 같은게 저 오폭으로 폭격이 중단되니까 독일군은 폭격이 별거 아니라고 방심했고, 그 다음날 진짜 융단폭격을 맞아야 했습니다.ㄱ-
위의 본문 사진에 보이시는 그분 아니셔요? ㅉ_ㅉ) 오올
일본군 내에 미국 스파이가 있었듯이... ㅋㅋ(아..조선 스파이일지도) ㅋㅋ
그러저나 멕네어가 보수적이다보니 그런감이 없잖아 있는데 되려 저게 효율성만 떨어지는 짓거리였으니 돈이 더들었지요. 그보다 사람의 핏값이 더...ㄱ-
ps. 덕분에 뉴타입 질렀습니다
그가 44년 7월에 오폭으로 사망한 이후로도 미군은 한참은 독일 전차에게 당해야 했으니 사실 죽으려면 그 자신이 견인식 대전차포가 효과적이었다고 무리수를 쓰며 박박 우긴 북아프리카에서 사망했어야 했습니다.ㄱ-
PS: 역시 마도마도 호무호무의 힘입니다!
레슬리 맥네어 대장은 이렇게 욕을 먹을 정도로 삽질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루트비히 베크처럼 포병이 전장의 중심이라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기동전에 대한 이해도 나름 있었죠. 맥네어는 대전차 자주포 센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기계화 포병 부대(대전차 자주포)에 긍정적이었습니다.
센터장인 앤드류 브루스 대령의 요구에 따라 신형 대전차 자주포 개발을 맥네어는 지지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게 울버린이죠. 단, 맥네어는 중장갑 대화력 대전차 자주포를 개발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징징되는 브루스 대령의 의견을 묵살하고 빠르지만 유리턱인 울버린 같은 차량을 선호했습니다.
문제는 울버린과 그보다 더한 종이장갑을 가진 대전차 자주포를 운용한 경험이 없는 무능한 미군의 손에서 미국 대전차 자주포들은 북아프리카에서 마구 터져나갔고, 결국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미국 야전 지휘부는 대전차 자주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잠시 브루스 대령에게 낚였던(?) 맥네어는 본연의 '견인포 매니아'로 돌아왔죠.
다만 경과를 보십시오. 왜 맥네어가 다시 견인포 매니아가 됐는지 말입니다. 현장 지휘관들이 대전차 자주포 무용론을 들고 나왔고, 대구경 견인포를 달라는 요구를 하자 그걸 들어준 겁니다. 일단 이러한 딴지가 들어오기 전까지 어쨌든 맥네어는 기계화 포병 설립에 비교적 적극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