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0일 있었던 역사 밸리 송년모임은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신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그중 몇몇 이야기도 나오고 했는데 역시나 그놈의 원균 떡밥은 여전하더군요.ㄱ- 특히나 종친회의 움직음을 보면 역사를 다룬 사극이나 서적에 대한 종친회에서 주도했던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나 여러 분쟁이 자연스럽게 생각나지 않을수 없단 말입니다.(아마 대표적이었던 태조왕건 관련이나, 혹은 최근 있었던 공주의 남자의 신숙주 묘사에 대한 건등.)
종친회에서는 원균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두둔하는 모양이며 사료에 대해서 몇몇 자의적 왜곡하는 모양도 있습니다만, 그동안의 판례를 볼때 사극이나 서적에서 내용을 상대로 한 소송은 결말이 패소로 끝났었고, 만약 기념관이나 그런 곳에 대한 소송은 아직 판례가 없지만 비슷한 결과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원균 떡밥이 나왔으니 칠천량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수 없겠죠.
사실 칠천량 해전은 역시나 패배할수 밖에 없던 요인이 가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치룬 해전과 비교하면 그 원인이 명백하지요.
가장 비교되는건 해전이 야간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이 야간 전투를 거의 꺼려하다 시피한 요인이 야간에 일어남으로 인한 화포의 명중률 하락과 접근전의 가능성 증가가 있다는 거죠. 거기에 당시 신호통제 역시 야간이 가장 힘들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간 이순신 장군이 치뤄왔던 해전은 노량해전을 제외한다면 낮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상자 기록이 매우 미미한 편이었으나 야간에 전투가 발생한 노량해전으로 가면 지휘관이던 이순신 포함, 이영남, 이언량등 주요 지휘관급 사상자가 상당히 많았지요. 사실 노량해전도 일본군을 포위한 가운데 원치 않은 야간이라는 시간에 발생한 터라 당시 상황으로써는 전투 시점을 조정할 여지도 없었고 말입니다.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야간에 진행된 칠천량 해전에서도 조선군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환경이란 말입니다. 또한 격군의 문제가 있겠지요.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의 경우 돛도 있지만 역시 격군에 기동력을 의존할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이점은 이순신 장군도 잘 알던 것으로 격군의 확보에 힘을 써온게 사실이죠. 하지만 워낙 힘을 써야하는 고역이다 보니 많이 기피하는 보직이기도 합니다.

칠천량 해전 당시 상황을 보면 이 중요한 격군이 육군으로의 차출이나 뇌물등으로 격군에서 빠지는등 계속 약화되었단 겁니다. 특히나 원균이 함대를 출정할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파도등이 심하게 일었고 덕분에 10~20여척이 그에 휩쓸려 서생포로 가버렸지요.(결국 이 병력들은 울산에 주둔중인 가토 기요마사의 병력에 의해 전멸) 그런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다가 그제서야 칠천도로 귀환하여 정박하는데 당시 격군의 피로도는 최악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그제서야 정박했으므로 보급의 필요성이 생겼지요. 이때문에 가장 중요한 판옥선의 기동력이 상당히 손실된 상태였고 병력 대부분이 피곤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비슷한 예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 해군이 보급을 위해 정박후 배를 비웠다가 그틈을 타 스파르타 해군이 아테네 해군을 포위한 형국이지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칠천량 해전이 발생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결과입니다만, 과연 함선과 병사는 어떻게 된 것인가를 정리해야겠죠.
사실 함선의 경우 격침되었을 가능성보다 방치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명량해전 이후 노량해전 이전까지 조선 수군의 규모가 급증가 한 원인도 점차 회복하면서 칠천량 해전 당시 방치했던 함선을 찾아 편입하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고 말입니다. 또한 방치할수 밖에 없던 요인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격군의 피로도가 최악이라 사실상 기동성을 잃었기 때문에 방치 할수 밖에요. 그와중에 병력 역시 이런 혼란으로 인해 흩어진 경우로 봐야겠습니다.(반대로 칠천량에서 전사한 이억기나 최호등의 경우 역설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높은 지휘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는 반증일겁니다.)이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에 북귀한후 했던 것이 바로 함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해안을 돌면서 흩어진 병력을 다시 소집하던데 있었고, 명량해전 이후에도 흩어졌던 장수나 병사들이 꾸준히 집결했던 것으로도 봐도 사실 병력의 상당수가 당시 전장상황에서의 혼란으로 인해 기동력을 기대할수 없는 상황에서 배를 버릴수 밖에요. 그외 일본군이 나포해버린 것도 기록등에서 언급은 있으니 격파 비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것 보다는 이하 일겁니다.
그외 떡밥건의 경우...
중동 이야기가 나오니 역시 최근 이란이 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떡밥.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경우 미 5함대가 그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반응이 나오고 있지요.

뭐, 이렇게 보면 단순히 좁은 해협이지만...
넓게 보면 참 골치 아픈 지역입니다.
중동지역 석유 수출 상당수가 저 지역을 통과하니까 말이죠.
이란이 해군력이야 프리킷이나 미사일 고속정, 자폭테러용 보트(...)는 그렇다 쳐도 무시할수 없는게


아니, 왜 골치아프냐면, 우선 킬로급부터 설명하죠. 이 킬로급 잠수함은 러시아가 여러 나라에 수출한 디젤 잠수함으로, 한국도 한때 도입할뻔 했던 경력이 있던 잠수함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놈의 디젤잠수함이 소음이 낮은 편이죠. 즉 덜 걸린단 말입니다. 특히나 그동안 잠수함이 얼마나 애를 먹이는지는 포클랜드 전쟁만 봐도 영국군이 아르헨티나의 209급 잠수함 한척 잡겠다고 별 삽질 다한걸 생각하면 쉽습니다.(결국 못잡았음.) 그런게 잠수함인데 이란은 3척 보유중이죠. 가장 문제는 어뢰공격이 아니라 잠수함을 통한 기뢰 살포. 특히나 저 좁은 지역에 기뢰 살포는 골때리는게 최신함이라도 기뢰에 접촉하면 심각한 손해를 입지요.(걸프전에서 기뢰로 미 해군 이지스함과, 강습상륙함이 피해를 입음)
거기에 저 C-802의 경우 포클랜드 전쟁에서 충격을 준바 있는 엑조세 대함 미사일의 카피판으로써 레이더가 기만 당할 확률이 적단 말입니다. 심지어는 2007년 헤즈볼라가 발사한 C-802에 이스라엘군 아일라트급 초계함인 하닛함이 피격, 4명이 전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쓴 포스트에서도 다뤘으니 참고 하시면 될겁니다.(아이러니한 역사의 반복.)
그리고 더 골치 아픈건 저게,즉 C-802가 북한에 흘러갔을 가능성 여부.(...)
한국군 내에서도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터라 정말 이란이 북한에 제공했다면 상당히 골치아픈 놈입니다.
물론 이란이 몇달전에도 봉쇄 발언을 했던 경력도 있고 또한 저 지역 봉쇄가 미군의 개입을 당연히 불러오기 때문에 실제로 이란이 실행할 가능성은 낮습니다만, 정말 벌인다면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이란-이라크 전쟁당시 미 해군이 유조선 보호차 파견되어 활동한바 있고 그와중에 일어난 사건이 스타크호 피격사건, 빈센트호 사건이지요.ㄱ- 아무튼 그런 전례가 있으니 미국이 가만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사우디가 몇달을 미룬 F-15SA 구입과 기존 F-15개량, 아파치 헬기등 대량 구매를 결정하자 미국이 이를 환영하면서도 이란에 대한 압박으로 의미를 찔러넣는 것이죠.(뭐 경제적 효과도 있겠다만.)
아무튼 떡밥중 두건에 대해 좀 작성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다른분들도 흥미 있어 할것 같아서 정리 해봤습니다.
아무튼 역사 밸리 송년모임에 참가해주신 많은 블로거 분들께 감사드리고 2011년을 잘 마무리 짓고 2012년 새해는 더 좋은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종친회에서는 원균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두둔하는 모양이며 사료에 대해서 몇몇 자의적 왜곡하는 모양도 있습니다만, 그동안의 판례를 볼때 사극이나 서적에서 내용을 상대로 한 소송은 결말이 패소로 끝났었고, 만약 기념관이나 그런 곳에 대한 소송은 아직 판례가 없지만 비슷한 결과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원균 떡밥이 나왔으니 칠천량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수 없겠죠.
사실 칠천량 해전은 역시나 패배할수 밖에 없던 요인이 가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치룬 해전과 비교하면 그 원인이 명백하지요.
가장 비교되는건 해전이 야간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이 야간 전투를 거의 꺼려하다 시피한 요인이 야간에 일어남으로 인한 화포의 명중률 하락과 접근전의 가능성 증가가 있다는 거죠. 거기에 당시 신호통제 역시 야간이 가장 힘들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간 이순신 장군이 치뤄왔던 해전은 노량해전을 제외한다면 낮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상자 기록이 매우 미미한 편이었으나 야간에 전투가 발생한 노량해전으로 가면 지휘관이던 이순신 포함, 이영남, 이언량등 주요 지휘관급 사상자가 상당히 많았지요. 사실 노량해전도 일본군을 포위한 가운데 원치 않은 야간이라는 시간에 발생한 터라 당시 상황으로써는 전투 시점을 조정할 여지도 없었고 말입니다.

노량해전의 경우 평소 치룬 해전과 다르게 이렇게 난전이 있었을것으로 추정.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야간에 진행된 칠천량 해전에서도 조선군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환경이란 말입니다. 또한 격군의 문제가 있겠지요.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의 경우 돛도 있지만 역시 격군에 기동력을 의존할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이점은 이순신 장군도 잘 알던 것으로 격군의 확보에 힘을 써온게 사실이죠. 하지만 워낙 힘을 써야하는 고역이다 보니 많이 기피하는 보직이기도 합니다.

조선수군 주력, 판옥선
칠천량 해전 당시 상황을 보면 이 중요한 격군이 육군으로의 차출이나 뇌물등으로 격군에서 빠지는등 계속 약화되었단 겁니다. 특히나 원균이 함대를 출정할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파도등이 심하게 일었고 덕분에 10~20여척이 그에 휩쓸려 서생포로 가버렸지요.(결국 이 병력들은 울산에 주둔중인 가토 기요마사의 병력에 의해 전멸) 그런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다가 그제서야 칠천도로 귀환하여 정박하는데 당시 격군의 피로도는 최악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그제서야 정박했으므로 보급의 필요성이 생겼지요. 이때문에 가장 중요한 판옥선의 기동력이 상당히 손실된 상태였고 병력 대부분이 피곤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비슷한 예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 해군이 보급을 위해 정박후 배를 비웠다가 그틈을 타 스파르타 해군이 아테네 해군을 포위한 형국이지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칠천량 해전이 발생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결과입니다만, 과연 함선과 병사는 어떻게 된 것인가를 정리해야겠죠.
사실 함선의 경우 격침되었을 가능성보다 방치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명량해전 이후 노량해전 이전까지 조선 수군의 규모가 급증가 한 원인도 점차 회복하면서 칠천량 해전 당시 방치했던 함선을 찾아 편입하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고 말입니다. 또한 방치할수 밖에 없던 요인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격군의 피로도가 최악이라 사실상 기동성을 잃었기 때문에 방치 할수 밖에요. 그와중에 병력 역시 이런 혼란으로 인해 흩어진 경우로 봐야겠습니다.(반대로 칠천량에서 전사한 이억기나 최호등의 경우 역설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높은 지휘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는 반증일겁니다.)이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에 북귀한후 했던 것이 바로 함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해안을 돌면서 흩어진 병력을 다시 소집하던데 있었고, 명량해전 이후에도 흩어졌던 장수나 병사들이 꾸준히 집결했던 것으로도 봐도 사실 병력의 상당수가 당시 전장상황에서의 혼란으로 인해 기동력을 기대할수 없는 상황에서 배를 버릴수 밖에요. 그외 일본군이 나포해버린 것도 기록등에서 언급은 있으니 격파 비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것 보다는 이하 일겁니다.
그외 떡밥건의 경우...
중동 이야기가 나오니 역시 최근 이란이 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떡밥.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경우 미 5함대가 그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반응이 나오고 있지요.

뭐, 이렇게 보면 단순히 좁은 해협이지만...

중동지역 석유 수출 상당수가 저 지역을 통과하니까 말이죠.
이란이 해군력이야 프리킷이나 미사일 고속정, 자폭테러용 보트(...)는 그렇다 쳐도 무시할수 없는게

이놈의 킬로급 잠수함.

그리고 이놈의 C-802 대함 미사일
아니, 왜 골치아프냐면, 우선 킬로급부터 설명하죠. 이 킬로급 잠수함은 러시아가 여러 나라에 수출한 디젤 잠수함으로, 한국도 한때 도입할뻔 했던 경력이 있던 잠수함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놈의 디젤잠수함이 소음이 낮은 편이죠. 즉 덜 걸린단 말입니다. 특히나 그동안 잠수함이 얼마나 애를 먹이는지는 포클랜드 전쟁만 봐도 영국군이 아르헨티나의 209급 잠수함 한척 잡겠다고 별 삽질 다한걸 생각하면 쉽습니다.(결국 못잡았음.) 그런게 잠수함인데 이란은 3척 보유중이죠. 가장 문제는 어뢰공격이 아니라 잠수함을 통한 기뢰 살포. 특히나 저 좁은 지역에 기뢰 살포는 골때리는게 최신함이라도 기뢰에 접촉하면 심각한 손해를 입지요.(걸프전에서 기뢰로 미 해군 이지스함과, 강습상륙함이 피해를 입음)
거기에 저 C-802의 경우 포클랜드 전쟁에서 충격을 준바 있는 엑조세 대함 미사일의 카피판으로써 레이더가 기만 당할 확률이 적단 말입니다. 심지어는 2007년 헤즈볼라가 발사한 C-802에 이스라엘군 아일라트급 초계함인 하닛함이 피격, 4명이 전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쓴 포스트에서도 다뤘으니 참고 하시면 될겁니다.(아이러니한 역사의 반복.)
그리고 더 골치 아픈건 저게,즉 C-802가 북한에 흘러갔을 가능성 여부.(...)
한국군 내에서도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터라 정말 이란이 북한에 제공했다면 상당히 골치아픈 놈입니다.
물론 이란이 몇달전에도 봉쇄 발언을 했던 경력도 있고 또한 저 지역 봉쇄가 미군의 개입을 당연히 불러오기 때문에 실제로 이란이 실행할 가능성은 낮습니다만, 정말 벌인다면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이란-이라크 전쟁당시 미 해군이 유조선 보호차 파견되어 활동한바 있고 그와중에 일어난 사건이 스타크호 피격사건, 빈센트호 사건이지요.ㄱ- 아무튼 그런 전례가 있으니 미국이 가만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사우디가 몇달을 미룬 F-15SA 구입과 기존 F-15개량, 아파치 헬기등 대량 구매를 결정하자 미국이 이를 환영하면서도 이란에 대한 압박으로 의미를 찔러넣는 것이죠.(뭐 경제적 효과도 있겠다만.)
아무튼 떡밥중 두건에 대해 좀 작성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다른분들도 흥미 있어 할것 같아서 정리 해봤습니다.
아무튼 역사 밸리 송년모임에 참가해주신 많은 블로거 분들께 감사드리고 2011년을 잘 마무리 짓고 2012년 새해는 더 좋은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원균을 부관참시하는 글을 다시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욕 먹어도 싸긴 하지만 말입니다.
F-15 생산라인 유지하는 데에 아라비아 분들이 공이 크군요.
개인적으로는 F-15SA보다 많은 F-15SE를 보고 싶군요.
그리고 사우디의 조치로 보잉이 끝 마무리를 좋게 보냈지요. 사실 사일런트 이글은 일본이 F-35을 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채택 가능성이 급락했습니다. 사실 한국, 이스라엘을 노렸다고 봐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F-35로 굳었고 한국은 가능성이 그래도높았는데 일본이 F-35구매를 결정하면서 한국도 F-35구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되면서 사일런트 이글은 거의 망했지요.
근데, 원균은 무타구치급 맞으니 상관업ㅂ음ㅇㅇ (!!!)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누군가의 친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무튼 salamis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