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땜빵용 총기는... 1부 그런저런 역사들

어느덧 세계적인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M16입니다.

사실 1960년대 미국은 새로운 개인화기 개발에 들어갑니다.

SPIW, 즉 특수목적 개인화기 프로그램으로

미 육군은 플레쉐트라는 초경량의 다트형 고초속 탄환을 사용 할 경우 매우 낮은 반동으로 높은 발사속도를 얻어 개인화기로도 빠른 연사력을 얻을거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곤 1961년 테스트에서는 ‘60발이 장전된 1.6kg 무게의 총기로 분당 2300발의 발사속도가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SPIW는 야심차게 시작되었고 여기에 미 육군은 3연발 유탄발사기까지 요구하지요. 또한 무의탁에서도 충분한 제어가 가능하고 장전시 무게는 4.5kg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만약 이대로 나온다면 그야말로 혁명적인 무기가 될판이었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위 사진은 SPIW 프로그램에 따라 스프링필드 조병창이 제출한 시제품입니다.
 

당시 스프링필드 조병창및 민간업체 3곳이 시제품을 냈는데 무게가 6.4kg에서 11kg까지...
무게가 실감 안나실것 같아 다른 무기로 설명하면 여러분이 군대에서 쓰시던 K-2가 3.26kg, K-3가 6.9kg, M60이 10.4kg...

개인 화기가 K-3정도의 무게에서 최대 M60 정도의 무게의 무기라면?...


또한 부피역시 개인화기로 쓰기에는 컸습니다.

이와중에 미국은 베트남전에 들어가게되고 M14가 정글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아직도 개발중인 SPIW를 쓸수도 없는 노릇.
이와중에 미 공군이 M16에 관심을 갖고 먼저 채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석기시대 드립으로 유명한 커티스 르 메이 공군 참모총장이 M16을 쏴보고는 채용해달라고 X징징 해대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당시 미 육군은 M14를 채용한 마당에 M16을 채택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르 메이가 국방부에 3번은 채용을 요구했지만 기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M16은 희망을 보게 됩니다. 특히 당시 케네디와 맥나마라는 M16이 게릴라전에 유용하다고 보고 시범적으로 베트남에 보내서 테스트하여 현지 군사고문관들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인도네시아도 주문을 하였고 1962년에 들어서는 공군이 제식 채용을 하면서 드디어 본격적인 주문이 들어오지요.



이와중에 국방부장관 맥나마라는 M14와 SPIW에 의구심을 품었고 SPIW가 개발 완료될때까지는 M14의 생산을 중단하고 M16을 임시 땜방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1회 한정으로 미 육군은 1963년 8만5천정의 M16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시험용이니까 XM16E1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만 단 공군용과 다르게 노리쇠 전진기가 달려 있다는게 특징이지요.

위의 것이 M16A1 아래것이 이전 버전으로
노리쇠 전진기 유무와 소염기의 형태로 구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길어지고 SPIW는 아직도 개발이 지지부진...
결국 XM16E1은 M16A1이 되어버리고, M203 유탄발사기까지 장착하게 되고...




1966년에 들어서는 미 육군은 SPIW를 보류한다고 발표하고 맙니다.

사실상 취소나 다름이 없는 발표로 SPIW는...




아! 망했어요, 망했어요!



그리하여 SPIW가 나올때 까지 땜방역활을 할 예정이었던 M16A1은 땜빵이 아닌 제식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나토가 SS109탄을 표준소총탄으로 채용함에 따라 M16A2으로 개량되며 우리가 미군하면 떠오르는 M16A2으로 개량되고 말지요.

이것이 M16A2...

하지만 미국은 SPIW가 망했음에도 신형총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니...

그 이후 이야기는 다음으로...
 



덧글

  • 노카운트 2010/07/13 23:52 #

    세계적인 총기류는 역시 BB탄이죠 90년대 초엔 M16 BB탄이 인기였습니다
    다만 10대들이 가지면 엄한사람 잡는 흉기...
  • 누군가의친구 2010/07/14 00:16 #

    아니, 이글루스 블로그까지 찾아서 덧글을 다실줄이야...ㄱ-(물론 본인이 먼저 그랬지만...ㄱ-)

    보호장구도 없이 20세 이상 전동건 가지고 설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죠.

    사실 아동용 해봐야 14세용까지고... 초딩이 들면 그야말로 불법...
  • 노카운트 2010/07/14 00:31 #

    님하가 너무 불쌍해서 덧글 달았을 뿐이야! 딱히 츤데레는 아니니까! 흐.. 흥!!
  • 누군가의친구 2010/07/14 10:12 #

    헐퀴... 츤데레라니..
  • 방바닥 2010/07/14 10:26 #

    M16A1 -_- 자대에서
    지겹게 썼었죠. 미군애들이랑 작전 같이 하면
    아직도 쓰냐고 놀리던 그 총 ㅠ
  • 누군가의친구 2010/07/17 17:00 #

    미군입장에서는...-_-;;
    하지만 미 공군이 쓰는 M16A2의 경우 상당수가 M16A1에 M16A2의 업그레이드 킷으로 개조한 물건이라 여전히 M16A1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지는...ㄱ-
  • 문제중년 2010/07/15 22:43 #

    1. M16의 개발은 1950년대입니다.
    SPIW 이전의 Project SALVO에서부터 출발했고 이 때는 플레쉐트만 아니라
    듀플렉스나 트리플렉스(혹은 그저 그리너 볼), 소구경 고속탄 모두가 연구되
    던 때입니다.
    한마디로 단시간내에 최대 화력 투사를 해보자를 가지고 다연장총기까지 전
    부 손대보던 시절이었죠.

    2. 미육군이 AR15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콜트도 아닌 아말라이트가 포트 배닝에 시제품 내놓고 평가받고 물먹게 해준건
    미육군입니다.
    그리고 미공군이 채택했을 때 미해병대와 함께 느긋하게 우리도 가져 갑니다 라
    고 손들었죠.

    3. 르메이의 AR15 구매가 빠꾸맞은건 그 숫자가 필요이상으로 많다라고 판단되
    어서였지 그보다 적은 양에 대해서는 군소리 없이 허가해 줍니다.

    4. XM16E1은 실험용이 맞지만 이미 사용해본 AR-15/M16의 미육군식 (해병 포함)
    개선 버젼입니다.
    이미 이 때는 땜빵과는 거리가 멀어졌던 상황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0/07/17 17:09 #

    1. 자료참고는 국방일보에서 참고하다보니 저부분은 확인해보니 잘못썼습니다. 거기에 문맥상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부분은 짜른 탓에...ㄱ-

    2. 물론 그건 AR-10입니다. 그리고 공군이 더 관심이 많았다는것을 강


    3. 물론 대규모 채용은 정권이 바뀌면서입니다.

    4.물론 당시 계약때는 1회 구매 한정으로 8만 5천정을 구입하기로 해서 말입니다. 이게 1회한정이 아니게 되면서 자연스래 저 시험용 명칭은 빠진 겁니다.1회 한정 자체는 SPIW은 아직도 안나온 상황이고 M14는 부적합하여 생산중지한 상황이다보니 땜빵의 의미였지요.
  • 문제중년 2010/07/17 23:16 #

    2. AR-10은 1955년 12월에 포트 배닝에 보내져 평가받고
    1957년 4월말인가에 제출되나 이미 미육군은 마음을 정한 상태였고
    덕분에 1957년 5월 6일에 T44가 T47(T25에서 출발)와 T48(FAL)을
    제치고 M14로 채용되죠.

    그리고 AR10이 물먹은 상태에서 미육군에서 아말라이트에 제안을
    하죠.

    '지금 우리 소구경탄약쪽도 연구중인데 한번 참여하겠냐?'

    그 결과 AR15가 등장하고 첫 AR-15의 테스트가 1958년 3월 포트 베닝에서
    평가 받습니다.
    그런 다음 이거저거 개선 요구를 받고 연구가 진행되던중 1959년말, 7만 5천
    달러에 권리가 콜트로 넘어가죠.

    그 후 1960년 7월, 일설에는 7월 4일에 콜트의 직원들과 수박 몇통을 날려버리
    면서 감동먹은 커티스 르메이가 AR-15의 구매를 하게 되죠.

    요기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공군 이전에 AR-15로의 방향과 연구에 미육군
    의 역활이 작은건 아닙니다.


    3. 정권과 관계없이 르메이는 처음에 8만정 신청을 했으나...
    이건 의회에서 정지당합니다.
    이게 아마 1960년 9월인가 10월일 겁니다.

    그 후, 1961년 중반쯤에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나 8,500정만 승인되고 이에
    열받은 르메이, 이 문제를 케네디에게까지 끌고 가보려고 했으나 물먹었죠.

    애초에 채용을 승인해달라는데서 빠꾸먹은건 한방에 8만정을 사달라고
    한게 절대 영향을 안미쳤다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4. 8만 5천이라면 아마도 1963년 11월 4일, 콜트가 맺은 백3십만달러짜리
    계약중 육군이 가져가기로 신청한 XM16E1의 숫자인 것같습니다.
    이에 대해 이미 사이가 틀어진 공군은 M16으로 1만 9천정을 가져가기로
    했고.

    이 8만 5천( + 1만 9천)이 들어갈 때, 땜빵 한다는 생각을 했냐면...
    글쎄요란게 그렇습니다.

    - M14 더이상 안쓴다.
    - 65년까지 2년동안 주문량 계속 받는다.
    - 관련해서 변형과 개량등등을 계속 연구.

    더하여 그 다음에 초에 이미 양산을 위한 보고서와 평가, 연구서등이
    나오던 판이었고 이건 M16이란 물건이 그게 CXM16E1이건 뭐건 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땜빵이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진 것이고 땜빵으로 볼려면
    1962년 이전으로 가야 하는게 합당한 상황일 겁니다.


    p.s:
    땜빵총이라면 M14가 진짜 땜빵입니다.

    이쪽은 차라리 M16쪽이 더 나은 편이다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비참한
    운명이 예정됐으니.

    애초에 새로나온 GPMG인 T65 (M60)와 탄약이 호환되면서
    지금까지 써오던 낡은 M1 개런드를 교채하면서
    시간이 지나 SALVO로 시작된 일련의 프로젝트가 끝나 새 총 나오면
    바꿔볼까 하던 처지였으니 말입니다.

    왜 맥나라마가 이거 한방에 목줄 끊어버리고 미육군이 1964년 이후로
    확실히 뺀다는 소리를 한지 이해가 되고도 남을 처지였던거죠.
  • 누군가의친구 2010/07/21 19:58 #

    아무튼 답글은 감사드립니다.
    그러저나 M14는 M14EBR로 아직도 명줄이...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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