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세기 당시 해전에서 화포의 문제점은... 그런저런 역사들

화포가 역사에 등장한 이후 공성용에 국한되던 화포는 함선에도 탑재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달리 당시 해전에서 화포의 유효 사거리는 생각보다 짧습니다.

레판토 해전이나,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기대할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100~250미터 수준이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당시 화포 제조의 문제점과 여러 환경적 요소가 있습니다.

일단 화포의 문제점을 들자면

화포의 포신이 정밀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유는 당시 주조로 만든 데다가 거푸집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힘들고, 이로 인해 포신과 포강의 평행이 미묘하게 어긋난다던가, 애초에 계획했던 지름과는 일치하지 않고 포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하는등의 문제점이 있었지요. 이경우 동일한 구경의 포탄을 쓴다 하더라도 미묘하게 난 구멍에 따라 폭발하면서 가스가 세고 결국 화포마다 제각각 다른 사거리가 나옵니다.

게다가 포수의 숙련도도 문제였습니다. 숙련된 사수라면 좀더 긴 유효사거리를 기대할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유효 사거리는 대폭 줄어듭니다. 숙련도 정도에 따라 화포에 쓸 화약 양 조절이라던지 포의 각을 잡는다던지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면서 동일한 화포를 쏨에도 사거리가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특히 화약의 양 조절이 실패하면 화포가 폭발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선상이라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지상에서 운영할때와 달리 선상은 파도와 너울로 인해 항상 흔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거리와 정확도가 지상에서 운영할때와 크게 어긋합니다. 특히 이게 일정치 않은 경우 사격대상이 멀수록 명중율은 기대하기 힘들지요.


이런 문제때문에 화포가 등장함에도 갤리가 주력인 레판토 해전의 경우 결정적 병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갤리 구조상 화포를 함수에 1~3문 많아야 5문 정도밖에 탑재 못한 다는 점도 있고 말입니다. 당시 화포는 그저 백병전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근접해서 발사하는 경우였지요. 심지어 당시 기함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는 선상 백병전이 주로 이루어졌고 말입니다.

무적함대의 패배로 끝난 칼레 해전의 경우 먼나라 이웃나라의 영향으로 영국의 화포의 사거리가 길어 유리한걸로 많이 인식합니다만, 화포에 의한 성과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다만 원거리 포격으로 접근을 방지한 수준이지 영국이 승리한 정도는 되지 못했단 말이지요. 당시 영국 해군의 지휘관중 한명인 리처드 호킨스 역시 '적함과 가능한 한 거리를 좁혀서 사격하는 것이 최상의 전투법이다'라고 한것을 생각하면 화포사격에 대한 인식을 알수 있습니다.

이후 포신의 절삭가공 기술이 등장하면서 화포가 어느정도 표준화 되어 편차가 줄어들긴 합니다만 위의 문제점은 개선하긴 힘들었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해전에서도 유효 사거리는 15~16세기 수준에서 조금 나아진 수준으로 km 단위는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PS: 그렇다면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 대해 인식도 깨지기 마련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화포의 문제점은 유럽과 다를바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렇다면 당시 조선 수군 화포의 유효 사거리는 100~250미터로 봐도 무방하겠습니다만, 그 압도적인 전과와 미미한 피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불멸의 이순신'이 잘못된 인식을 주어서라고 까고 설명하면,

 기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일본 수군의 주력이 안택선(아다케부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순신이 올린 장계에는 '중선 몇척, 대선 몇척' 이런식으로 보고되었습니다만, 여기서 대선은 안택선으로 봐야겠지요. 이점에서 안택선은 주력일수가 없었고, 그보다 작은 세키부네가 주력임을 알수 있고, 또한 일본 함선의 안습인, 가벼운 재질의 나무를 썼다는 점이 있지요. 가벼운 재질인 이상 판옥선보다 피격시 피해가 전혀 다르다는 소리이고, 더구나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화포에 의한 피격시 피해는 판옥선과는 전혀 다르겠습니다. 
 물론 이순신의 지휘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던 것이 해전을 치루면서 아군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싸웠다는 점이지요. 결코 일본수군이 아군을 압도할 정도의 상황에서는 전투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각개격파를 하였고, 낮에 해전을 했다는 점, 그리고 원균이 지휘안 칠천량 해전의 패배 원인을 비교대조하면 설명하기 쉽지요...ㄱ-

  
  




덧글

  • Frey 2010/06/24 08:52 #

    궁금한게 있어 여쭙고 싶습니다. 명량해전은 어떻게 되는지요? 명량해전의 경우에도 각개격파가 가능했었던가요?
  • 누군가의친구 2010/06/24 15:08 #

    명량해전의 경우, 상당히 좁은 수로를 택함으로써 13척(12척)의 함선으로 포위되지 않고 동등하게 싸울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택했던 점과 대장선이 선두에서 싸웠다는 점이 승리의 원인입니다.
    당시 압도적인 전력차는 명량의 좁은 폭으로 포위당할 위혐을 줄였고, 다른 함선이 전투를 주저할때 대장선이 직접 선두에서 고분분투 하면서 지휘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무너질뻔한 대열을 유지 했지요.
  • dd 2010/06/24 15:19 # 삭제

    명량해전은 본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화포나 전투적 역량의 우위에서 나온 승리라기보다 전술적 선택, 그 중에서도 지형적, 기후적 측면을 잘 활용하여 승리한 전투죠.

    울돌목, 즉 명량해협에서의 조류는 현대의 선박들도 극복하기 어려워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야할때에 소형선은 대형선에의해 '인양'되어 가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시험 조력발전소가 설치되기도 했죠. 왜군은 그러한 조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수적 우세만 믿고 덤비다가 조류에 의해 전열이 엉망진창이 되버린거죠. 게다가 지형적으로 병목지형에 몰리게된 왜군을 조선 수군이 섬멸... 이게 명량해전 입니다.

    조선측은 홈그라운드 이점, 즉 정확한 조류의 방향 전환 시점과 강력한 조류의 활용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지형적 이점을 잘 살려 1:10에 달하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겁니다.
  • ArchDuke 2010/06/24 12:45 #

    음;; 좋은 설명해주신분 계시긴 한데....말그대로 좁은 길목에서 1:1 상황을 만들었다죠
  • 크핫군 2010/06/24 18:30 # 삭제

    그러고 보니 궁금한게 어느 시점부터 해전에서 포격이 강조된겁니까???
  • 누군가의친구 2010/06/24 23:10 #

    주력이 갤리에서 갤리온으로 넘어가면서 비로소 화포가 해전의 주력병기가 됩니다. 이후 전열함 시대가 되면서 화포의 위치는 더욱 굳어지지요.
  • Tlqkf 2012/05/30 18:22 # 삭제

    좋은정보감사
  • 로ㅓㅇㄴ카ㅣ 2012/05/30 18:22 # 삭제

    ㅗㅎ호허허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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