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2016년 공지사항 그런저런 공지사항

2015년인 만큼 공지사항을 다시 작성합니다.




-201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당시(군인 아님.)-


현 블로그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 실명은 이범석입니다.
-주로 역사및 밀리터리및 덕스러운 것을 다룹니다.
-물론 쓸데없는 잡담도 많습니다.

-이 블로그 주인장은 뜬금없이 지름신을 숭배합니다.
-넥센 히어로즈의 우승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라팔이 팔려서 콩댄스를 추었으므로 자꾸 근거없이 콩댄스를 요구하시면 골룸합니다. 어짜피 얼마전에 브라질에서 탈락했잖아. ㅅㅂ, 그 망할 인도 국방부는 라팔 일부만 사고 대신 Su-30 구매로 선회할 것으로 보임.
-링크 신고, 문의 내용은 방명록(링크 클릭)에 해주시면 됩니다.
-연락할 일이 있으시면 메일(ksdd5713@naver.com)이나 트위터(https://twitter.com/NuGunGaEChinGu)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의 진 히로인, 시노노메 사츠키를 최애캐로 삼고 있습니다. 삿짱이 너무 모에한거 있죠!?




차단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고글은 알짤없이 차단합니다.
-근거없는 욕설및 비방도 차단입니다.
-이재율, 책사풍후, 마광팔은 자동 차단입니다.저 사람들에겐 제눈에 흙이 들어와도 광복절 특사같은거 없습니다.
-반성문은 메일로(ksdd5713@naver.com) 제출해야만 합니다.


유언비어및 오해에 대한 해명
-최애캐 안바꿉니다. -저 민간인입니다. 군인 아님.
-넥센 히어로즈가 한국시리즈 우승하면 콩댄스 춘다고 했지 그외 춘다고 한것 없습니다.
-aLmin은 황색저널리스트이므로 그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저는 네리아리님보다 건전합니다. 하드에 야동은 1mb조차 없습니다. 야동은 귀중한 하드 용량만 잡아먹을 뿐이죠.


해당 공지사항은 2016년 기본 공지사항이며 2017년까지 유지되며 상황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습니다만 최애캐는 안바뀝니다. 그러니까 유언비어좀 작작 하라고!



이런 모에한 최애캐를 왜 갈아치웁니까?


PS: 왠지 2013년, 2014년, 2015년 버전에서 우려먹기 같지만 기분탓입니다.

탄금대 전투에 대한 잡담. 그런저런 역사들

신립의 탄금대 전투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말이 많으니 좀 몇가지 이야기를 해두죠.

사실 조선의 왜구 대응은 해상에서 교전과 이후 기병을 통한 토벌인데 기병을 동원한 전략은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이에 대한 대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말 이성계의 황산대첩만 해도 이성계의 가별초의 기병들이 대대적인 활약을 해댔죠. 사극 정도전이야 예산도 예산이고 말 자체를 적절히 탈 그럴 환경도 아니니 보병대 보병의 교전으로 다뤘지만 말입니다.

결국 조선의 대응도 고려말의 연장선상으로 갑니다. 수군의 전문적 양성과 설치, 높은 기병비율은 고려말 영향이 크죠. 사실 여진족 관련 대응도 기병을 통한 전술적 행동이지만, 그나마 기병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진족과 낮은 왜구를 감안하면 왜구가 조선의 기병을 상대하기 꽤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신립이 기병이 많아서 문경새재 대신 탄금대를 골랐다고 하긴 어렵죠.

물론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신립은 대군을 가지고 교전해본 적이 없음.

신립은 정해왜변때 대군를 몰고 간적은 있지만 이미 왜구가 철수하여 교전을 벌이지 못했습니다. 즉 탄금대 전투가 신립의 첫 대군을 운영한 교전이 되는 셈이죠.

-고니시의 일본군은 기존의 왜구가 아님.

애초 전쟁으로 단련된 일본군인데다 고니시의 지략은 약탈질을 하던 보통 왜구 수준이 아닙니다. 결국 신립의 병력을 끌어내어 3면에서 압박하며 괴멸시켰죠.

-신립의 기병 운영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기병의 무예를 바탕으로 한 궁시에 맞춰져있음.
당시 여진 토벌 관련 실록 기록을 보면 신립이 잘 훈련된 기병 수백기를 이끌고 만여명 이상이 포위한 성을 구원가서 활로 적장을 저격하여 물리친 것이고 여진족 토벌을 위한 대군을 지휘하진 않았습니다. 즉 이는 신립의 기병운영과도 관련있는데 여진 토벌시에는 소수의 훈련된 기병으로 약점을 골라 궁시로 여진족의 지휘를 와해시키는 전략을 취했지만 결국 이때의 기병운영 경험이 탄금대에선 독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신립이 탄금대를 포기한 이유로 우회로와 가토 기요마사를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문제있는 이야기입니다.

우회로라는건 지형을 매우 잘 알때 유용합니다. 일전에 스노우님이 쓴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 포스트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만 해도 이미 페르시아군은 우회로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존재를 안다는 것과 지형을 잘 안다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존재한다는 걸 안다해도 그걸 찾는것 자체가 시간이 걸리고 오히려 지형를 잘 아는 적군의 매복에 걸릴수도 있기에 모험이죠. 특히나 조선인이 고니시의 부대에 매우 협조적이지 않은 이상 우회로에 쉽게 들어가질 못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의 경우 페르시아군이 우회로로 우회가 가능했던건 지형을 잘 아는 배신자의 협조였죠.

그럼 가토 기요마사? 애초 신립이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군에 대해 인지했다는 기록도 없고 전쟁 초기 조선 자체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공산이 큽니다. 즉 침입한 일본군 자체를 고니시만 있다고 신립이나 조선 조정이 착오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만일 두 부대를 모두 인식했을 경유 서울에서 모집한 부대를 모두 몰빵해서 신립에게 주거나 혹은 신립이 탄금대에서의 한차례 회전으로 끝내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죠.

결국은 신립의 탄금대 선택은 우회로의 존재때문도 아니고 가토 기요마사의 존재때문도 아닙니다. 기존의 조선의 왜구 토벌 전술및 신립의 전무한 대군 운영 경험의 한계가 겹쳐진 문제죠. 결국 신립이 아무리 지위가 막강하고(선조의 아들인 신성군의 장인) 무예가 뛰어났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립이 대군을 운영할 능력은 별개였고 조선 기병의 대 왜구 전술이 부적절 했던 것이죠.


PS: 임진왜란이 조선 기병운영에 여러 영향을 미쳤는데 그간 조선왕실이 사대부들의 압박에도 기병 무예를 위해 신성시한 격구(이성계가 워낙 격구를 잘했고 좋아했던 결과)가 임란 이후 무예과목에서 탈락하고 마상편곤으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명나라에 매번 조공으로 줄어드는 군마를 유지하려 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전국의 목장이 거의 초토화 됩니다. 결국 후금(이후 청)의 기병전력에 대항하기 위해 기병전력을 어떻해서든 짜내서 양성하려 했지만 이괄의 난으로 그나마 힘들게 양성한 기병전력이 날아가버리고 이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칩니다. 괜히 인조때부터 꾸준히 조선이 수레가 불편함에도 수레를 병기로 활용하여 기병에 대항하려는 논의가 꾸준히 오간게 아닙니다.

PS2: 그와 별개로 조선의 기병 양성은 명나라에 대한 조공으로 타격을 입는데다 그렇다고 마값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평균적으로 7~8할 정도의 가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조선이 바보는 아니라서 명에게 여러 사정을 들어 줄여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고 정치 외교적 사안이라 마값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줄어든 전마는 여진에서 말을 구입하고 제주도는 특별히 신경쓴다던지 목초지가 좋은 섬 지역에 목장을 운영하려는 자구책으로 매꾸어 가려고 시도는 합니다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오던 조운선이 침몰한다던지 왜구가 섬을 약탈하는 문제로 쉽지 않았습니다.

트위터를 보면 레바의 기분을 알것 같군.

그러니 치킨, 치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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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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